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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여러분의 고향, 귀속의 나라 오페레이는 멸망했습니다. 이미 쥐고있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비능력자와, 가지고 있지 않던 권리를 찾으려는 이능력자들의 전쟁으로인해 나라는 황폐해지고, 승자도, 패자도 없이 삭막한 땅만이 남아있습니다. 그야말로 인재(人災)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땅에서 살아남은, 마지막이라고 칭해도 좋을 이능력자입니다.

 

 

02.

이능력자, 그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는 분명했습니다. 나라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숨어있는 이능력자가 존재했다는 점, 나라가 생긴 이래로 그들에 대한 차별이 심해졌다는 점,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 이래로 이어진 차별은 멈출 줄을 몰랐다는 점. 인간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비능력자들은 두려워서, 꺼림칙해서, 혹은 다들 그러니까 등 각각의 이유로 이능력자들을 차별했습니다. 차별이 당연시되어선 안 되지만, 비능력자들의 끔찍한 일은 이어졌습니다.  차별은 곧 이능력자들을 반발, 즉 반란 혹은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03.

 부당한 대우에 대한 반항은 거세었고, 그 전쟁은 백여년간 이어졌습니다. 그들의 전쟁은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저, 그들의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남겨두었습니다. 협상도, 누구 한쪽의 우세함도 없는  전쟁은 하염없이, 하릴없이 이어져만 갔습니다. 개개인의 전투능력은 이능력자가 우월했지만, 비능력자들의 기술력과, 인구 역시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의 득도 없는 소모전만이 이어지고, 누구의 승리도 보장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습니다. 병사들도, 전투를 이끄는 우두머리들도 지쳐만 갔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기나긴 내전의 끝은 수많은 비능력자와, 이능력자의 희생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04.

종전은 갑작스레 일어났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비능력자의 살상력 강한 신규 무기로 인해 일어난 일도,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에 의해 일어난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이능력자에 의해 전쟁이 끝난 건 맞습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방향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그래, 전쟁의 종료와 오페레이의 멸망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05.

멸망의 원인, 종전의 매개체는 다름아닌 이능력자의 폭주 때문이었습니다. 인류가 존재하고, 이능력자가 존재한 수백년, 수천년동안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엇이 그 원인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치 이능력자의 발생처럼,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아마, 기나긴 전쟁이 원인이 아닐까 하고 그저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06.

전장의 우두머리로서, 최전방에 섰던 그는 물을 사용하는 능력자였고, 그의 능력 폭주로 인해 모든 것이 물에 잠겼습니다. 그 어느 물 능력자도 도달하지 못한 경이로운 수준의 비가 내렸습니다. 경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요, 세상의 멸망으로 향하는 가장 첫 탄환이 된 그의 폭주는 단말마를 수준이었습니다. 강물이 넘쳐 홍수를 만들고, 발을 겨우 디딜 만큼 세상이 물에 잠겼습니다. 비능력자는 물론, 그 어느 이능력자도 그에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점점, 물에 잠겨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비가 그쳤습니다.

 

 

07.

한 번의 재해가 지나가고, 모두가 안심하던 그 때였습니다. 물론 그저 안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한 명의 폭주가 있었던 이상, 제 2의, 제 3의 폭주가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이능력자의 폭주가 한 나라의 멸망까지 이르기에 비단 한 사람의 폭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폭우’가 끝나고 다른 재해에 대비하기도 전 또 다른 폭주자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능력은 불이었습니다.

 

 

08.

불의 폭주는 ‘폭우’가 약과였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세상의 반 이상을 뒤덮었던 물을 완전히 말려버리고, 강 바닥은 드러나 갈라지기 시작했으며, 산림은 물론 말 그대로 땅 위에 있는 것들이라면 뭐든 태워버렸습니다. 겨우 유지하고있던 식량이 동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과 뭐든  태워버리는 ‘불꽃’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앗아갔습니다. 목숨은 물론, 식량과 삶의 터전까지도.

 

 

09.

폭우와 불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갖가지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들의 폭주는 이어졌고, 사람이 살아가기에 이 땅은 더욱 척박해져만 갔습니다. 전쟁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페레이의 인류는 멸망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10.

재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추었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고요해졌습니다. 전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상이 삭막해졌습니다. 말 그대로 척박하고 황폐한 땅만  남아있었습니다. 오페레이의 인류는 멸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소수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비능력자들은 거의 전멸, 그들과 비교해 신체능력이 뛰어나고 이능력에 익숙하며 사용할 수 있는 이능력자들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마저도 절반 이상, 대다수가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주어진 건 다름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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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럼 다시, 여러분의 고향 귀속의 나라 오페레이는 멸망했습니다. 이미 쥐고있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비능력자와, 가지고 있지 않던 권리를 찾으려는 이능력자들의 전쟁으로인해 나라는 황폐해지고, 승자도, 패자도 없이 삭막한 땅만이 남아있습니다. 그야말로 인재(人災)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땅에서 살아남은, 마지막이라고 칭해도 좋을 이능력자입니다.

 

 

02.

조금 과거로 되돌아갑시다. 이능력자들의 폭주는 오페레이의 땅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습니다. 폭주로 인해 일어난 재해의 여파, ‘이상기후’. 폭주와 같은 지속적이고 커다란 재해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바람이 불고, 작열의 태양이 내리쬐고, 눈폭풍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가득한 날씨가 변덕스럽게 변했습니다. 독성이 가득한 이상한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거나,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기이한 생물체가 돌아다니거나 했습니다.

 

 

03.

살아남은 이능력자들은 이 땅을 살아갈 그들을 위해, 그들의 자식과 후손들을 위해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상처가 남은 땅에서 그나마 가장 안전한 장소 하나에 모여 그곳을 ‘safe zone’ 이라 명명하고 밖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재해 대응팀’을 만들어 지금 일어나는 이상현상들을 파해치고 해결방법을 찾아오는 방법입니다. 가장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물론 그들도 모두 이능력자이고, 조금 힘들겠지만, 이상현상의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현재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모색해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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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우리는 재해 대응팀 ‘■■’ 입니다. ‘safe zone’ 밖으로 나와 우리들이 살아갈 터전에 일어난 이상현상들을 조사하고,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찾아 돌아갈 것입니다. 

 

01.

‘■■’는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안 가본 곳이 없다 할 정도로 모든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동안 위기도 수없이 겪고, 희망을 찾았다가 잃어버리기도 여러번, 이제 가보지 않은 곳은 딱 한 곳입니다. 마지막 장소, 그 곳만이 남아있습니다. 저기엔 ‘희망’이 남아있어야 할텐데. 저기엔 ‘ㅡ’가 있어서 걱정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제대로 상대해본 적 없는데. 

 

00.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미지의 장소로 들어섰습니다. 다른 곳과 다른 독특한 구조물이었습니다. 시설이 굉장히 크고, 어쩌면 이 곳을 새로운 터전의 기반 혹은 새 ‘safe zone’으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02.

그들이 ─와 마주쳤습니다. 제법 능숙하고, 꽤나 훌륭하게 ─를 상대했습니다. 무사히 ─를 처치하고 그곳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는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방심한 탓인지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안타깝고, 어리석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흩어지고, 준비해온 것들 또한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는, 사력을 다한 공경이었는지, 정말로 완전히 숨이 끊어진 듯해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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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나요?

 

 

당신, 정신을 차린 건가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얼른 눈을 뜨는 게 좋을 거예요.

 

여긴, 당신에게 완전히 낯선 장소니까요.

 

황폐하고, 인간이 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그런 곳이 여러분의 주변을 가득 에워싸고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신의 동료가 당신의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렸던가요.

시간만 걸렸나요?

많은 희생 또한 따랐습니다.

 

그러니 어서 눈을 뜨세요.

그리고 얼른 정신을 차리세요.

 

돌아가야죠, 당신의 고향 오페레이로.

 

당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이겨내고 돌아가야죠.

 

자, 어서 일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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